저 기사의 주인공이 여자 소방관이 아니라 20대 남자 소방관이었으면 과연 조선일보 급의 언론사가 전면 노출되는 기사로 썼을까?
직장 상사들 17명이 징계를 받고 2명이 수사까지 받는 상황이 벌어졌을까?
아마 군대에서 흔히 보던 것처럼, 없었던 일로 조용히 무마되고, 피해자 가족들만 아들의 시신을 받아들고 눈물을 훔쳐야 했을 것이다. 같은 조직 사람들은 ‘아 그 병X 고문관?’ 이렇게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겠지.
한국 사회가 20, 30대 여자들에게 얼마나 큰 혜택을 주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인데, 요즘 한편으로 생각하면 돈 받는 직장가서 저런 갑질도 예상 못한 안이한 20대 여성 분에게 저렇게가지 사회적으로 큰 혜택을 주는게 맞는건지도 모르겠다.
저 직장 상사들은 평소에 하던대로 신입 직원에게 각종 갑질을 했을텐데, 그게 여자 직원이었기 때문에 저렇게 큰 사건이 될 거라는 걸 상상도 못했던 분들일 것이다. (라고 다시보니 예상대로 지방의 어느 소방서에서 벌어진 일이다. 사회·문화적인 변화의 불길이 아직 닿지 않은 곳이다.)
여자분들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직장 생활해서 살아남고 싶으면 저런거 다 이겨내야 한다. 당신들 아버님이 저런거 다 이겨내면서 받은 급여로 당신들 키웠다.
난 D모 외국계 증권사 IBD에 첫 직장을 들어가던 2008년, 인턴에서 정규직 되는 암묵적인 심사 중에 이사님과 소주 한 궤짝을 비운 적이 있다.
인턴 2달째 끝 무렵이었는데, 삼각지 역 근처에 있는 모 차돌박이 고깃집에서 나와 경쟁하던 어느 학부 과 동기 인턴과 이사님, 이렇게 3명이서 한 테이블에 앉고, 다른 테이블에는 부장님과 정규직 직원 2명이 앉았는데, 인턴 2명 포함 8명 밖에 안 되는 작은 한국 팀에 금융 위기 시절이라 1명 정규직 자리도 안 나는 상황이었고, 사실상 정규직 대접을 해준다는 것만으로도 그 학부 동기와 나는 정말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그 한 궤짝을 다 비웠다.
이사님이 소주잔을 채워주시면 그 자리에서 원샷하고, 차돌박이가 구워지는대로 바로바로 이사님에 상추쌈을 싸 드리다가 보니 30병 중에 2병 밖에 안 남은 걸 보고 내가 술이 너무 취해서 헛 걸 보고 있는게 아닌가 싶었던 기억이 난다.
나름 학부 동기들 사이에서 말술, 고래 같은 소리를 들었는데, 심지어 면접 중에
‘By number of Soju bottles, how good are you with drinks?’
같은 질문에
‘I’ve had 4-5 bottles with no issue. I think I’ve never had my limit.’
이딴 허풍까지 들이댔지만, 2시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최소한 10병 이상을 비운 적은 기억에 없었다. 그 날 이사님이 우리의 1/2 정도를 드셨던 걸 생각해보면, 아마 인턴 둘이서 각각 12병, 이사님이 6병 정도를 드셨을 것이다.
그걸로 끝이 아니라, 2차를 이동해서는 뒤늦게 합류하신 대표님 상무님 앞에서 양주 폭탄으로 아폴로 13* x 2 같은 걸로 '쇼’를 해 드렸는데, 그 때 그 가짜 정규직(?) 자리를 경쟁하던 인턴 동기가 소주 12병에 그만 녹다운이 되어서 집에 바래다 주고 온 탓에 날 더러 2배를 마시라고 하더라.
(*아폴로 13은 양주 잔을 젓가락 2개로 받치고, 그 밑에 맥주 잔을 상하로 2개, 제일 아래에는 접시를 놓은 다음, 꽉 채운 양주 잔 위에 맥주 1병을 부어서 흘러내린 양주 + 맥주가 아래의 맥주잔 2개를 다 채우고, 거품이 살짝 접시에 놓인 걸 놓고, 그걸 13초 안에 다 마시는 '술 쇼’를 말한다. 맥주의 탄산 때문에 13초 안에 마시기 쉽지 않은데, 난 1셋트를 7초, 2셋트를 13초 안에 마셨었다.)
그 친구는 아버님이 모 대형 언론사 편집국장, 강남 출신, S대 경제학부, 초중등 시절 해외 생활 4년 등등, 정말 빠질 것이 없는 초특급 스펙의 인재였다. 특히 부모의 직장과 해외 초중고 경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외국계 증권사, 그것도 가장 경쟁이 치열한 IBD의 특성상, 정상적인 상황이었으면 아마 S대 경제학부를 제외하면 다른 경쟁력이 없는 내가 밀렸을 것이다.
그런 사정을 아는 내 친구 중 하나는, 1차 자리를 끝내고 택시 기다리던 중에 화장실에서 저녁 같이 먹자는 전화가 왔길래,
나: 야, 우리 회식왔는데 방금 인턴 둘이서 소주 한 궤짝 비웠다.
친구: 내가 너라면 화장실에서 다 토하고 간다. 그래야 2차에서 버틸거 아냐
라고 그러더라. 이런건 당연하다는 인식이 깔려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난 하나도 안 토하고, 2차에서도 내가 알고 있는 어줍잖은 온갖 '술 쇼’들을 다 했었다. 돌이켜보면 부모님이 다른 건 못 물려주셨어도 엄청난 강철 체력 하나는 물려주신 것 같다.
당시 나랑 경쟁하던 인턴 동기는 1차 끝나고 이동하던 택시 안에서 자기가 술을 못 깨니까, 근데 그 날 술을 못 깨면 인턴 끝인 걸 아니까 정말 이를 악 물고 택시에서 안 내리려고 하던데, 부장님이 달래서 보내는데 애를 먹던 걸 봤던 기억도 난다. 그 친구는 나중에 술로 압박을 덜 하는 다른 더 좋은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그 회사 갔다길래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다른 친구들은 '네가 더 능력이 뛰어난데’라며 더 좋은 회사가는게 부럽지 않냐고 하던데, 내 개인 능력이 좀 더 뛰어날지는 몰라도, 다른 스펙을 봤을 때 그 직장은 못 가는 곳이니까, 난 내 능력을 인정해준 회사에 정말 감사해하면서 다녔다. 일을 못해서 죄송했을 뿐이다. 그 친구들은 하나 같이 자기들이 비슷한 강남+외국+부모님… 스펙을 갖췄으니 내 사정이 눈에 안 들어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걸 아마 여직원들한테 시켰으면 대부분 기절하고 도망갔을 것이다. 아니면 저 위의 소방관 사례처럼 언론에 오르내리는 사건이 되겠지.
요즘 20대들이 직장 갑질 어쩌고로 불평하는 걸 보지만, 또 내가 저런 이야기를 당연하게 하면 날 '영포티’라고 놀릴 수도 있겠지만, 나이를 먹으며 조금만 힘들어도 책임감 없이 도망가는 인력들을 헤아릴 수없이 많이 보면서, 남의 돈을 받고 일하는데 얼마나 정신력이 투철한 인간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저런 테스트를 하는게 한편으로는 납득도 된다. 집에 별로 간 적이 없고, 어쩌다 2시간 정도 잘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고, 인턴와서 1달 고생하던 K대 경영학과 출신 하나는 나중에 밤 12시에 퇴근한다고 전화했더니 '왜 제가 있을 땐 그런 날이 없었나요…'라며 잠결에 전화받던 기억도 있지만, 그렇게 인턴 왔다가 못 이겨내고 도망가는 불나방들을 믿고 소수 정예 시스템을 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언제나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이사님이 술 접대가 끝나고 그 날 들은 이야기를 전화로 전달해주시곤 다음날 오전에 출근하면 완성된 Deck을 이사님 책상 위에 올려 놓기를 원하셨는데, 점심 때 해장 술자리에서 고객사 분에게 밤새 내가 만든 Deck으로 세일즈를 하시는 걸 보면서, 우리 조직이 이렇게 빠르게 잘 돌아가고, 고객사가 원하는 걸 다 맞춰줄 수 있는 곳이라는 걸 보여주시려던 그 감정을 그 때도 막연하게나마 이해했었고, 지금은 너무 잘 이해할 수 있다. 지나가며 던진 한 마디를 술이 잔뜩 취한 상황에서도 기억해서 사무실에서 일하던 부하 직원에게 던진 이사님이나, 그 한 줄의 정보로 단추로 끓은 수프를 만들어 내야 했던 부하 직원도, 한 건에 수십, 수백 억원의 수수료를 받는 딜을 하는데, 그런 기민함, 민첩함, 사고력, 추리력, 정신력은 살아남고 싶은 인재에게 당연한 역량이다.
그 시절 내가 겪었던 여러 테스트 중에는 홍어 삼합을 먹으러 가서 이사님과 부장님이 내가 홍어 삼합 한 접시를 다 비우면서 그 악취에 표정 하나 안 일그러뜨리는 것도 보셨던 기억이 나고, 내가 전라도 출신도 아니고, 부모님도 전라도 출신이 아니어서 그걸 처음 먹어보는데도 별 표정 변화없이 먹던 걸 꼼꼼하게 확인하셨던 기억도 난다. 먹을 줄 모르니까 알려주시면서 표정을 하나하나 점검하시던데, 그 땐 배고픔에 별 생각이 없었지만, 돌이켜보면 젓가락 가는 방향 하나하나, 먹는 것 하나하나 감시당하는게 그렇게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던 날이다.
그 외에도 차마 글로 쓰기 어려울만큼 좀 충격적인 사건들도 많이 겪었는데, 난 그게 힘들어서가 아니라, 나는 머리 좋은 걸로 승부하는 인간이지, 그렇게 접대 잘하는 양아치로 살고 싶지 않아서 결국 수학으로 내 머리를 더 쥐어짜는 길을 걸었다. 아니었으면 난 지금쯤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이미 화장터의 잿가루와 연기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저런 식으로 '정신력 심사’를 가장한 갑질, 혹은 '고문’을 정당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데, 인간이 모인 조직에서 위계질서가 있으면 세상 어디를 가나 어떤 방식으로건 집단이 새로운 구성원을 괴롭히기 마련이다. 단지 형태가 조금 다를 뿐이다.
뉴욕에 있는 어느 헤지펀드에 면접을 봤던 적이 있는데, 바쁘니까 샌드위치 점심 먹으면서 짧게 이야기하자고 하더니, 샌드위치 먹는 중에 자기들에게 필요한 수학, 파이낸스 부분 중에 내가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질문을 팍팍팍 던졌던 기억도 있다. 속칭 ‘토하겠다’ 싶은 상황이었는데, 음식 먹고 싶은 생각은 하나도 안 들고, 손짓 발짓을 섞어가면서 열심히 설명을 해 줬었다. 근데, 말을 중간에 잘라먹기 부지기수고, 설명하는데 다른 질문들을 마구 쏟아내면서 계속 압박을 하더라. 평소에 단련이 되어있으니 망정이지, 그런 면접을 처음 봤으면 무슨 이딴 회사가 다 있냐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동네에선 그렇게 짧은 시간에, 심지어 샌드위치 하나 먹는 시간마저 아껴가며 상대방에게 내 능력을 각인시킬 수 있을만큼의 순발력, 사고력을 두루두루 갖추고 있어야 업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다. 자기들도 바쁘니까 점심 시간에 샌드위치 하나 먹는 걸로 시간 아끼고, 그 시간에 면접을 봐야 다른 시간에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을테니까.
비단 여자 분들 뿐만 아니라, 20대 젊은 청년들이 앞으로 얼마나 직장 문화를 바꾸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소주 한 궤짝을 2시간 만에 비우면서 비굴하게 굴었던 우리 세대가 이제 40대가 되면서 직장 문화는 굉장히 많이 바뀐 편이다. 아마 대학들로 가도 90년대 학번까지는 'FM’으로 자기 소개를 했겠지만, 2000년대 들어오면서 그런 문화는 아마 몇몇 대학에만 남은 구시대의 유물로 바뀌었을 것이다. 우리 세대는 그렇게 운동권과 군사 독재 시절 문화를 몰아내면서 사회 시스템을 변화시켰는데, 여전히 20대의 새물결의 눈에는 거부감이 크다면, 당신들이 주력이 되는 20년 후에는 지금보다 더 나은 문화로 바꿔라.
근데, 나처럼 도망가서 다른거 하고 있으면 그 직장은 영원히 그런 문화로만 남는다. 그 기업과 조직이 망해서 사라지지 않는이상, 그 문화를 만든 사람이 아래로 전수하는 구조가 반복되는 이상, 한 사회의 문화는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모두가 도망가는 시대가 되면 바뀔 수도 있겠네. 그 전에 가짜 인공지능이 아니라 진짜 인공지능이 나와서 인력을 대체해버리지 않는다면.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급여를 주는 사용자 입장에서 그렇게 절박한 심정이 아닌 인력, 내가 대단한데 왜 이렇게 갑질하냐고 불평하는 인력을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을까? 저 직원이 실수하면 회사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는데, 어떻게 믿고 급여를 꼬박꼬박 주면서 일을 시키지? 그냥 주식, 채권, 부동산에 투자하는게 더 발 뻗고 잘 수 있고, 직원 때문에 스트레스 안 받아도 되면 굳이 직원을 뽑고 싶을까? 컴퓨터 시스템으로 대체되는데 굳이 직원을 뽑고 싶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