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언론에서 화려하게 떠드는 것 이상으로, 노동 현장에서는 소리소문없이 인간 지능이 조금씩 인공 지능에게 밀리고 있다.
고교 시절로 돌아가면, 수능 400점 만점이었던 시절 내 지상 목표는 120분+100분+120분+80분이 배정된 시험을 얼마나 빠른 속도로 다 풀어내느냐였다. 모의고사 1회를 풀어서 많이 틀리면 3-4개, 적게 틀리면 1-2개였는데, 1문제도 안 틀리는 것보다 언어 영역 30분, 수학 15분, 수리탐구II 40분, 영어 20분, 이렇게 해서 1시간 45분 만에 1개 모의고사를 다 풀어 15분 동안 쉬는게 내 목표였다. 아침부터 야간 자율학습까지 14시간 정도를 써서 하루 7개 모의고사를 풀면 그날의 할당량을 채우는 거였다.
저게 자뻑인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저 정도 지식으로 만들어진 문제들은 오차 없이 풀어낼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고교 수준의 지능으로 해결할만한 업무를 기준으로하면 전국 상위 최상위 0.01%도 인공 지능을 이길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심지어 저렇게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어리석게 하루 7개 모의고사를 풀어야 할 이유도 없는 시대가 됐다.
그 시절, 이런건 어리석은 공부라는 생각을 매일같이 했지만, 수능 점수가 인생을 좌우하는 대한민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더 많은 문제 유형을 보고, 더 적게 틀리는 훈련 밖에 없었다.
당연하게도 대학을 들어가니 그 시절 모의고사 수백, 수천개를 풀었던 것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됐다. 시간 낭비였다.
직장을 다니다 유학을 가니 한국 대학에서 공부한 건 큰 쓸모가 없었다. 한국식 공부법에 젖어있다가 해외 명문대의 교육 스타일을 이겨내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나가 떨어지는 경우들도 많이 봤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다보니, 한국에서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돌아가는 학원식 교육이 얼마나 어리석은 교육인지가 더 뼈저리게 느껴졌는게, 우리랑 같은 교육 시스템 및 인재 선발 구조를 갖고 있던 중국 인재들이 한국 인재들과 거의 똑같은 문제들을 겪고 있는게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TA를 하면서 매주 금요일 오후에 60명을 앉혀놓고 3시간짜리 강의를 하는데, 중국 애들이 의지와 열정은 넘쳐나는데, 질문은 황당하고 단순한 경우가 너무 많았고, 답안지도 천편일률처럼 누군가의 토렌트 시드를 베낀 것 같았다. 시험 문제가 조금만 새로운 유형으로 바뀌면 줄줄이 0점을 줘야 하는 답안지들을 냈는데, 교수님은 괜히 말 나오면 그러니까 적당히 부분 점수를 주라고 하셔서 꼼꼼히 살펴보면, 컨닝을 했는지 모두가 똑같은 답안을 내서, 아이러니하게도 채점이 쉬웠던 기억도 있다.
동아시아식 교육의 한계: 기계식 지능 ≠ 진짜 지능
요즘 인공지능으로 불리는 LLM 서비스들이 우리에게 해 주는 여려 기능들을 보면, 그런 식의 Copy & Paste로 만들어 낸 지능, 즉 기계식 지능을 인간 지능이라고 오해했던 아시아식 교육의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것이 보인다.
구글 검색이 한동안 Meme이 됐던 시절, 구글 검색하면 뭐든지 다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분들, 구글 검색 내용이 다 맞고, 전문가가 말하는 내용들이 별 것 없다고 주장하는 분들에게 불만이 넘치던 전문가들이 만들었던 Meme들이 있는데, 대체로
- Law Degree
- Medical Degree
같은 실용 학문 학위들을 가진 분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병원에 가면, 구글 검색하고 와서는 의사 앞에서 아는체 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는데, 요즘은
- LLM vs. 실용학문 학위
로 전쟁터가 옮겨간 느낌이다.
구글 검색으로 찾아낸 정보보다 앞 뒤 문맥 차원에서는 챗GPT 같은 LLM으로 찾아낸 정보가 좀 더 적합할 수 있겠지만, 여전히 y=f(x) 같은 단순한 1변수 함수가 아닌 세상을 그렇게 통제해서 만들어낸 정보가 적합한 정보가 될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챗GPT가 알려준 의학 정보로 당신이 처방을 했을 때 부작용으로 사망하면 챗GPT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의사는 자기의 면허를 걸고 재판장에 나가야 한다.
다만, 이 분야도 매우 많은 단순 질병들은 결국 의사들이 기계식 지능에 자리를 내주면서 업무를 효율화 하고, 변호사들도 역시 같은 수순을 밟게 되리라 본다.
간단한 업무에 고급 인력을 동원하는건 자원의 낭비이니까.
인간 지능은 수능 점수가 아니라 사고력
지난 2021년부터 2024년, 늦게는 2025년까지, 3-4년간 한국에서 교육을 하면서 또 한번 느낀 거지만, 한국식 대학 서열을 결정하는 수능 시험, 특히 19살에 친 그 시험으로 인간의 지능을 평가하는 것은 굉장히 잘못됐다는 확신을 경험적으로 얻게 됐다.
큰 틀에서는 IQ 테스트 같은 수능 시험이 최소한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공 지능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인간의 지능은 기계가 만들어 낼 수 없는 지능, 즉 사고력, 혹은 생각하는 힘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더 이상 적절한 인재 선별법은 아니라고 본다.
위의 Y대 교수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읽을 수 있는데, 생각의 속도가 빠른 것은 기계를 더 이상 따라가기 어렵다는 걸 교육 현장에서 이미 느끼고 있고, 학생들도 그렇게 피드백을 주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반면, 저 교수의 주장대로, 생각하는 힘은 기계가 만들어내지 못하고, 결국은 인간이 해내야 하는 영역으로 남아있다.
- Exam: STA501_DataBased_Decision_Making_FinalExam_202110_Watermarked.pdf
- Term Paper: COM501_TermPaper_2021_watermark.pdf
- Term Paper: COM502_Machine Learngin_TermPaper_watermark.pdf
- Business Case: BUS501_AI_marketing_ProblemSet1_AttributionModeling_watermark.pdf
우리 SIAI의 시험 문제를 보면 알겠지만, 아마 챗GPT한테 채점표를 넣어줘도 우리 채점 기준으로 40점을 넘는 답안지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이미 개인적으로도 많은 실험을 해 봤고, 유럽 학생들이 직접 겪어보기도 했다.)
사실 저 40점도 부분 점수를 매우 후하게 쳐줘서 나오는 점수지, 내가 학생이던 시절처럼 깐깐하게 채점하면 아마 0점 근처가 나올 것이다.
왜? 우리는 생각을 해야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시험 문제를 만들었는데, LLM은 기계적으로 두 단어가 연결된 것만 놓고 답안지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요즘 교육계 곳곳에서 교육이 인공 지능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논의들이 있는데, 난 어딜 가나 저 위의 시험 문제들을 예시로 든다.
그럼 관련 전공자 아니면 대부분이 헉 소리를 낸다. 발표장에서 숨이 멎는 소리들이 들린다.
관련 전공자들은 재밌다는 웃음을 짓는 분들도 있고, 영미권, 유럽 주요 대학 교수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저런 시험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 교육이 아니면 돈을 받는 교육이 무의미한 시대가 왔다는 것을 모두가 암묵적으로 깨닫고 있다는 뜻이다.
그냥 구글 검색하고, LLM 검색하면 된다. 대부분의 지식은 기계식 지능으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Genuine Intelligence vs. Artificial Intelligence.
앞으로 1년 정도 동안 내부적으로 차분히 준비해서 내년 가을, 겨울 무렵에 첫 세미나를 열려고 준비 중인 주제가 아래와 같다.
- Genuine Intelligence vs. Artificial Intelligence (진짜 지능 vs. 인공 지능)
원래는
- Human Intelligence vs. Artificial Intelligence (인간 지능 vs. 인공 지능)
로 할려고 했는데, 2가지 문제가 있었다.
- 동아시아식 교육으로 만들어낸 기계식 지식 역량을 인간 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가?
- Gordon Institue 이름을 활용해야 한다
Genuine Intelligence와 Gordon Institute이 약자가 같으니까… 결국 안 쓰고 있던 도메인을 재활용하게 됐다^^
2번은 농담이고, 사실 1번이 우리의 주요 관심사였는데 (hiai.org 같은 도메인을 살려고 했었다가 포기했던 이유다), 그간 SIAI가 한국에서 겪은 사례, 유럽 지식인들이 아시아에서 교육 받은 인재들에게 느꼈던 내용들이 모두 담겨 저런 제목이 뽑힌 것이다.
또 하나, 우리가 저 이름으로 지적하고 싶었던 포인트는
위의 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이미 AI = 가짜 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있기도 하다.
- Genuine Intelligence vs. Artificial Intelligence (진짜 지능 vs. 인공 or 가짜 지능?)
아시아 인이 나 혼자 밖에 없는 회의를 하면서, 가장 아시아 교육의 문제를 많이 지적하던 내 입장에서도 그들이 아시아 교육이 낳은 인재들의 문제점을 말하면 사실 듣기가 별로 좋지 않다. 괴로운 감정, 안타까운 감정, 부끄러운 감정, 때로는 답답한 감정과 유럽에 대한 질투심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딱히 반박할 말이 별로 없다.
한국으로 고개를 돌려보면, 이 나라는 정말로 살기 좋은 나라가 됐다. 사회 시스템도 체계가 갖춰져 있고, 반도체, 자동차 같은 강력한 제품군을 가진, 81년 전까지 식민지였던 나라, 그것도 패전국의 식민지 였던 나라라는 걸 믿을 수 없을만큼 부강한 나라가 됐다. 최저임금x2가 되면서 인건비 기반 산업이 대규모로 이탈하긴 했지만, 여전히 탄탄한 인프라를 유지할 수 있는 재화와 용역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나라다.
내가 보기에 한국이 남은 1가지 문제는 위에서 지적한 저 교육 방식 문제다.
기계식 지능을 잘 갖춘 인재들은 AI시대가 오면서 버티기 힘들어 질 것이다. 당장 Gordon 가문도 날 더러 교수 대체하는 온라인 e-Learning 시스템을 만들고, 우리더러 컨설팅이나 미디어 노출 같은 다른 일을 해라고 압박을 넣는다. 위의 시험 문제를 만들어내고 채점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일괄 AI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마 늦어도 내년 초면 완성이 될 것이다.
사고력 훈련이 탄탄히 된 인재들에게만 학점을 주고, 논문을 쓸 기회를 주고, 학위를 주는 시스템을 돌리고, 나머지는 MOOC 방식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마 다른 대학들로 가도 10년 안에 정착이 될 것이라고 본다. 명문대의 신호 효과도 사라지고 있고, 의사 면허 같은 라이선스가 아니면 기계식 지능으로 만들어낸 학위가 의미가 없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1년간, 아니 저 세미나를 운영하게 될 몇 년 동안, Genuine Intelligence는 어떻게 길러내고,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사회 시스템으로 안착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질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가 해야되는 고민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