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e: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부킷 빈탕 일대의 고가도로 아래에서 광고판을 찍은 사진. 동남아시아에 글로벌 IT기업의 데이터 센터가 대규모로 진출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9월에 Bett Asia에 발표를 다녀오면서 일부러 시간을 내 주변을 좀 둘러봤었다.
물이 안 맞았는지 몸이 힘들어 멀리 돌아다녀보진 못했지만, 시내 중심가인 Petronas Twin Towers 일대를 보면서 동남아시아를 무시하는 한국 사람들의 인식과,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말레이반도의 현실 사이에서 불협화음을 그 짧은 일정 중에도 여러차례 느꼈다.
왜 유럽 조직이 동아시아 outpost로 일본/한국 대신에 동남아를 선택하려고 하는지, 또 규제가 심한 중국 밖에서 중화문화권 안착이 가능한 후보군이 말레이반도 남쪽이라고 강하게 주장하는지 여러모로 이해가 됐었는데, 이 분들의 강점을 몇 가지 뽑아보면,
- 영국 식민지였던 잔재가 강하게 남아서 다들 영어를 잘 한다
- 모든 사회 인프라에 영국 문화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있다
- 미국 못지 않게 유럽에 대한 존중심이 강하게 남아있다
- 외국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굉장히 적극적이다
- 교육도 영국식으로 돌아간다
등등을 꼽을 수 있겠는데, SIAI / GSB 관점에서만 보면 5번 항목에서 일본/한국보다 두드러지게 선호되는 부분이고, 나머지 1-4번은 모두 Gordon Institute에서 원하는 해외 시장의 요건들이다.
왜 그 분들이 두바이 다음으로 싱가포르/말레이시아를 꼽았는지 이번 출장 중에 새삼 느끼게 됐다.
유럽인들 입장에서는 글로벌 팽창이라는 옵션을 선택할 때 자국과 문화가 같은 곳이 당연히 선호될 것이다.
일본/한국, 그리고 대만처럼 속칭 Blue team에 속한 나라들에 대해서도 호감이 있고, 긍정적으로 봐주는 것도 꾸준히 느끼지만, 정작 영어로 의사소통이 한계가 있고, 이질적인 문화 때문에 적응이 힘들다보니 자본 투자를 기피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거기다 Gordon Institute 입장에서는 지난 몇 년간 SIAI / GSB로 한국에서 내가 겪은 각종 난관을 모두 다 알고 있으니, 한국에서 갑자기 엄청난 수요가 생기지 않은 이상 한국에 출장소를 열기는 어려울 거라는 걸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근데, 쿠알라룸푸르를 다녀오고 나니 위에서 말이 나오기 전에 당장 나부터 한국은 선택지에서 삭제하게 됐다. 반도체나 자동차 좀 생산하고, 제조업 성장 덕분에 선진국형 인프라가 갖춰진 건 사실이지만,
- 교육 수준도 낮고,
- 유럽식 고급 사고력 교육을 따라올 수 있는 인재는 거의 없고,
- 그렇게 인재를 길러봐야 국내 기업들이 소화해줄 수 있는 역량이 없는
나라다.
반면 이번 동남아 출장 중에 만났던 수 많은 교육/비즈니스 업계 관계자들은 내 소속 기관 이름과 발표 내용을 듣고는 AI 시장 전문가라는 인식이 딱 박힌 상태에서 날 대해줬고, 대화를 좀 길게 한 분들은 SIAI 홈페이지에서 내 발표자료, 최근 대외 활동, Working paper들을 훑어보고는 많은 질문을 던지더라.
(한국에서 같은 사건이 벌어져봐야 SIAI 홈페이지 찾아가는 사람도 없고, 영어라는 이유로 글 하나 읽지 않고, Working Paper는 아예 아무도 안 읽는 걸 생각해보면, 엄청난 격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남긴 기록들을 보고는,
- 세상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할 역량이 되는 사람
- 자기들보다 한 발자국 더 앞에서 AI 기술과 비즈니스 적용에 도전하는 사람
이라는 걸 바로 인식했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들일 것이다. 콘텐츠를 보고 상대방을 평가하는 인재와 한국처럼 ‘XX 유명함?’ 같은, 외부의 권위에 의존해서 상대방을 평가하려고 하는 인력 사이의 격차를 단번에 느끼도 했고, 질문의 깊이에서 말레이시아/싱가포르는 아시아 속의 유럽이구나, 여긴 동남아라고 덜 발전됐을 거라고 오해하면 큰 실례가 되겠구나는 생각도 했었다.
당장 사람 평가하는 방식에서부터 한국은 '유명함?'을 뚫어야하니 불필요한 마케팅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반면, 유럽식 사고 방식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인력이 많은 곳에서는 우리 조직의 전문성만 잘 보여주면 반은 먹고 들어갈 수 있다.
며칠 둘러보며 말레이시아가 쿠알라룸푸르를 아시아의 뉴욕으로 만들겠다고 그랬을 때 너무 큰 욕심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미안했고, 어떻게 국민 소득 15,000달러 남짓인 나라가 이렇게 3만, 4만 달러인 나라보다 더 인프라 수준도 높고, 인재들의 훈련도도 높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한 줄 요약하면, 부러웠다.
AI 시대, 인간은 Generalist vs. Specialist 중 어느 쪽 선택을 해야 할까?
여러 종류의 질문들 중
직장을 찾는 학생들이 앞으로 Generalist vs. Specialist 중 어느 쪽 선택을 해야할까?
과 관련된 질문들을 가장 많이 받았던 것 같은데, 내 답안과 가장 가까운 답안을 최근 LSE 교수 한 분이 Brookings 연구소에 기고해 놓으셨더라.
이제 Specialization으로 구직을 할려면 필요한 수준이 매우매우매우 높아졌다. 왜? Generalist들이 대부분의 Specialization을 다 해결할 수 있고, 아주 전문적인 내용만 손을 못 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전문성을 갖출 수 있는게 아니면 Specialist는 돈벌이가 안 된다고 보면 될 것 같은데, 예를 들면,
- 단순히 재무제표 숫자 맞추기만 하는 회계사는 AI로 대체될 것
- 반면 회계 장부 조작을 찾아내고, 기업 감사 중 숨겨진 사실을 꼼꼼하게 짚어낼 수 있는 회계사는 살아남을 것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개발자, 혹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코테(코딩 테스트)만 통과하면 된다, 그 딴 수학은 필요없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개발자 그룹의 다수일지 모르겠는데 (설령 그렇더라도 한국도 곧 깨어날 거라고본다), 내 입장에서보면, 이제 개발자 안 뽑고도 어지간한 IT 프로젝트들은 다 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개발자 왜 뽑나?
예를 들어, 내년 4분기에 런칭을 목표로 하고 있는 IP 거래 플랫폼 서비스에 필요한 자산 거래소 (Exchange) 부분 관련해서 한참 자료를 찾아봤었는데,
이렇게 다 개발을 해 놨다. Ruby on Rails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다 알아야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잠깐 긴장했지만,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웹사이트는 Discourse로 만들었고 (Ruby on Rails를 주로 쓴 오픈소스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아래에 보다시피
이미 완성된 서비스가 만들어져 있어서 Rails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만 갖고 있으면 서비스를 돌리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봐도 설치할 때 셋팅 값 조절하느라 애를 먹은 것 말고는 별 문제없이 이 서비스를 돌리고 있다.
Exchange쪽도 테스트를 좀 해보니 내가 Rails로 개발해야 할 부분은 없는 것 같고, 서비스 메인 페이지를 돌리기 위해서 Front-end 작업만 좀 해주면 되겠더라. 이것도 요즘은 어지간한 부분은 챗GPT 쓰면 대부분 해결된다. 생각을 많이 해야하는 부분이 아니라, 단순한 시스템 연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직 내부에서도 다른 개발 작업들 (AI Tutor 같은거) 때문에 후순위로 밀린 상태일 뿐이고, 세부 서비스를 설계하고, 상용화를 위한 전략적인 고민이 아직 남았기 때문에 SIAI Labs 팀이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않았을 뿐이다.
아마 저 서비스를 실제로 상업적 목적으로 런칭하고 나면 OpenDAX에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면서 가끔 이런저런 커스텀 서비스 요청을 넣을텐데, 그걸 제외하면 우리가 Kalshi나 PolyMarket 수준의 서비스를 만들면서 IT쪽 개발자를 회사 내부에 뽑을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본다.
비즈니스 로직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한국 개발자들 - 왜 내가 이걸 이해해야 하나? 난 개발하는 개발자다
한국에서 개발자들을 대략 30명 남짓 뽑아보고, 내보내봤고, 면접을 본 숫자까지 포함하면 몇백 명이 넘을 것 같은데, 내가 한국에서 개발자들에게 가장 싫었던 점을 딱 한 가지만 손에 꼽으라면
비즈니스 로직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는 거였다. 인도에서 워드프레스 플러그인 판매하는 개발자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깨닫게 됐고, 지난 몇 년간 글로벌 시장의 다양한 개발자들을 보면서 더더욱 느끼는 거지만, 한국 개발자들 중 압도적인 다수가
내가 왜 비즈니스를 생각해야 되지? 그건 기획자가 해야지
라는 마인드에 사로 잡혀 있었고, 그 막힌 사고를 풀어내려고하면 굉장히 강한 저항에 부딪혔다. 자기들한테 기획 시킨다고 화내는 경우도 봤고, 나한테 생각과 결정을 모두 떠 넘기고 자기들은 시키는 것만 하겠다는 뻣뻣한 태도들이 너무 불편했었는데, 몇 년을 지나면서 보니
- 생각하는 훈련을 애초에 받지 않았고
- 회사 서비스에 대한 주인 의식이 없었다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럽이나 인도, 동남아에서 만난 개발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사고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기계적인 시스템 개발을 넘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비즈니스 로직을 이해하고 따라올 수 있는 개발자를 글로벌 시장에서 훨씬 더 많이 봤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아닌 개발자들을 거의 못 봤고, 대화하다가 나한테 기획서 달라고하면 바로 대화를 끊어버렸었다. 당해보니 그런 인력은 내 시간만 뺏기고 일이 진척이 안 됐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국 인력에 대한 나의 근본적인 혐오증은 개발자들과 겪은 경험 기준으로 한국 시장 vs. 글로벌 시장 사이에서 겪은 엄청난 격차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위의 OpenDAX도 이메일을 보내고 미팅을 한 차례 하는데, SIAI 홈페이지 여기저기에 흩어진 자료들과 이 곳 내 개인 블로그의 글들을 보고 Kalshi나 PolyMarket과 유사한 개념 (Wisdom of Crowds)을 학술적으로 어느 정도 정리해 놓은 상태라는 걸 이미 파악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내 논문도 찾아봤더라. 우리 설명을 들으면서 자기네들의 코인 거래 시스템을 어떻게 변형하면 될지 아이디어들을 바로바로 던지는 걸 보면서 너무 고맙기도 했고, Github의 공개된 코드들을 보면서 막연하게나마 이렇게 고치면 되겠다고 생각했던 걸 굉장히 구체적으로 어떻게 독립 모듈을 만들어야 자기네들 버전업과 충돌이 안 일어나는지에 대한 설명도 듣고, 학술적인 실험 이후에 수익화 모델은 어떤게 있는지 질문도 받았고, 자기네들끼리 이런 생각을 해 봤다며 아이디어를 공유해주기도 했다.
개발자 채용으로 돌아와서, 최상위권 고급 개발 인력을 1-2명 정도 뽑아놓으면 연구팀이 IT 서비스 쪽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 고려는 하겠지만, 결국 IT 인력에 대한 의존도만 쓸데없이 높아질 걸 감안하면, OpenDAX에 외주를 더 주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위에서 보다시피 자기네 시스템을 파는 팀이다보니, 생각이 굉장히 유연하고,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지 우리보다 한 발 앞서서 생각하고 있는 조직을 굳이 피해야 할 이유가 없다. 결국 Front-end 연동 같은 사소한 부분들만 남을텐데, 연구 인력들이 살짝만 더 Generalist가 되면 거진 다 해결되는데, 사업의 핵심이 아닌 Specialist를 굳이 뽑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돌아가게 될려면 풀어내야하는 문제 중에 IT쪽 문제는 위에서 봤듯이 Open Source 서비스 회사와 기관 대 기관으로 풀어내고, 서비스 개선 문제는 유럽/미국의 연구팀이 고민하고, 영어로 홍보를 돌리는 문제는
- 싱가포르-조호르-쿠알라룸푸르
에 있는 영국식 교육을 받은 인재들로 풀어내면 되겠다 싶었다. (거기다 말레이시아는 인건비도 저렴하다.)
보시다시피 사업의 다른 영역에도 한국이나 일본이 설 자리가 없다.
비트코인 같은 상품들의 거래가 한국에서 인구 대비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점을 감안하면, 아마 서비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잘 돌아가고 있는 시점에 한국 커뮤니티들에 떡밥을 뿌리는 정도로 홍보를 하고 끝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아니, 우리는 비트코인처럼 사행성 서비스를 내놓는 조직이 아니니까, 더더욱 한국에서 홍보를 안 하는게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전체 그림 안에 한국 인재가 불필요하다는 수준이 아니라, 한국처럼 사고력 교육이 부재한 나라 인재를 뽑으면 안 된다는 내 주장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생길 것이다. A → B라는 단순 논리의 시스템은 이미 오픈 소스 서비스로 나와 있어서 굳이 인력을 추가로 투입할 필요가 없고, 서비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각종 비즈니스 문제를 AI/Data Science 알고리즘 개발이나 시스템 운영 방식 변경으로 풀어내고, 영어권 시장의 반응들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한국에서 알고리즘 개발을 하면 되지 않냐고 물을텐데, 아래의 예시를 보자.
‘조잡한 AI 시스템 = 한국 공돌이들이 만든 시스템’ 이라는 선입견
어제 (10월 4일), 한국 학생들 4명 논문 지도를 하는데, 공공 기관 중 한 곳에 일하는 학생이 국회의 법안 - 뉴스 이슈 매칭 서비스가 얼마나 부실한지 조목조목 까는 주제를 갖고와서 발표했었다.
국회에 상정된 법안들의 이름이 단순화되는 경우, 혹은 한자어로 바뀌는 경우가 많아서 뉴스에 언급되는 이슈들과 1:1로 연동이 안 되는 부분이 많은 것을 개선해, 국회가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외부에 좀 알리려고 하는 의도에서 만든 시스템이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근데, 법안 내용에서 말뭉치를 뽑고, 그 말뭉치에서 의미를 추론하고, 뉴스 기사들에서도 대표 키워드나 제목 밑에 있는 기사 상세 내용에서 말뭉치를 뽑아, 말뭉치들 수준에서 서로 유사도를 맞춰보는 서비스를 개발했었어야 될 것 같은데,
법안이 국회 법사위에 상정될 때 쓰는 이름이랑 언론 기사의 제목들을 1:1로 매칭하도록 일종의 단어 사전 하나를 더 만들어놓고는 서비스를 만들었다고 홍보를 해 놨다는게 그 학생이 한 발표의 핵심이었다.
무슨 말인지 납득이 안 될테니, 하나 예시를 들면,
- 노란봉투법 - 이라고 하는 언론 기사의 키워드와
-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줄여서 노조법) 개정안
둘을 연동시키려고 하는데, 두 단어가 모두 들어가 있는 표 하나 (아래의 표 예시 참조)를 만들어서 연동시켰지, 각각의 명칭 뒤에 있는 말뭉치들에서 Factor를 추론하는 작업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다는 거다.
- 뉴스 기사 이슈 명칭 | 법안 명칭 | 상정된 법안 명칭
- 노란봉투법 |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위와 같은 표에 없는 새로운 이슈와 새로운 법안은 어떻게 될까? 개정안이 법안 1개에도 수십 개, 심지어 수백 개가 나오는 경우들이 있는데, 가끔은 같은 법의 개정안이 다른 주제에 대한 대응임에도 법사위 상정될 때 명칭은 모두 XXX 개정안으로 동일한데, 이건 어떻게 대응해야하지?
욕 먹을 각오을 하고 노골적인 한 줄 요약을 던지면,
AI 서비스라고 사기쳤다~ 라고 할 수 있다.
설명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이거 공돌이들이 만든 거구만. 엉망이네
이렇게 말해버렸다. 한국에서 저런 식으로 기술력이라고는 없는데 겉으로만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여서 만든 공공/민간 서비스들을 이미 한두번 본 게 아니기 때문에 저런 표현이 바로 튀어나와버렸을 것이다.
공돌이들한테 미안하지만, 당신들이 국민 세금으로 저렇게 조잡하게 만들어 놓은 서비스들을 뽑아 정리하는데만도 한 달이 족히 걸릴만큼 수많은 사례가 쌓인 상태다. 책임질 일을 하지 않은 일부 공학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저런 사건들을 너무 많이 보면서 이제
기술력 부재를 감춘 조잡한 시스템 = 한국 공돌이들이 만든 시스템
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렸다.
이렇게까지 못 된 낙인을 찍어서 미안하다.
아마 저 위의 국회 서비스도 이런저런 말뭉치 처리 관련된 Library 몇 개를 붙여봤는데 제대로 안 돌아가니까,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표 하나 만들어서 서비스 뒤에 숨겨놓는 걸로 해결을 봤을 것이다.
정부 조직이야 따박따박 들어오는 국민 세금으로 돌아가니 저러고 그냥 넘어가겠지만, 사기업이 저런 외주 팀으로 조잡한 시스템을 만들고 있으면 그 회사는 망한다.
해외에도 알려진 한국의 조잡한 IT 기술력
근데 이런 사건들을 내가 유럽 애들한테 고자질(?)을 해서 외국 애들이 알고 있는게 아니라, 이번에 말레이시아를 가니, 동남아 애들도 다 알고 있더라.
LG CNS가 인도네시아에서 프로젝트 땄다가 조잡한 서비스를 납품하면서 인도네시아 장관까지 나서서 언론에 불만을 토로했던 사례가 있는데, 한국에는 보도 통제를 해서 잘 덮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영어로 그 사건을 접했었고, 이번 출장 중에 해당 프로젝트에 관여했던 인도네시아 관계자들에게 아주 상세한 정보를 듣기도 했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영문 기사 뿐만 아니라, 한국어 기사가 아직 몇몇 언론사에 남아있는데, 다들 네이버 뉴스 제휴 언론사가 아닌 걸 보면 LG그룹 미디어 대응 팀이 어떤 논리로 대응했을지 대충 짐작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왠지 손바닥으로 해를 가린다는 속담이 떠오르는데…)
- LG CNS, 인도네시아 차세대 국세 시스템 구축 실패 논란⋯구 시스템으로 임시 전환
- “인도네시아, K-IT에 속았다”…현신균 대표의 LG CNS ‘코어택스’ 품질 논란의 실체 < 산업·문화 < 기사본문 - 업코리아
한국인 입장에서 LG라는 대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잘 됐으면 좋겠고, 항상 어딘가에서 로고 붙은 광고가 보이면 묵묵히 응원하고 있지만, 영미권, 서유럽의 선진국도 아니고, 우리보다 IT 인력 수준이 낮다고 생각했던 인도네시아 애들한테 얼굴이 계속 붉어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10분 넘게, 조목조목 문제점들을 지적해가면서 듣고 있으려니 너무 괴롭더라.
특히 인도네시아 IT 인력들보다 수준이 낮다고 맹비난을 하는데, 위에서 언급한대로 한국 IT 인력들의 수준을 잘 아니까 한편으로 공감이 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가 왜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렇게 모욕적인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되나 싶었다. (아마 내가 공돌이라고 폄하하는 걸 듣고 있는 공학도들도 비슷한 감정일 것이다.)
문제의 근간은, LG CNS 직원들이 직접 그 서비스를 써 보면서 하나하나 QA를 하는게 아니라, 그냥 QA한테 일괄 일을 떠넘겼고, QA는 언어를 이해못해서인지, 일을 할 줄 몰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비즈니스 로직도 제대로 이해 못한 채 일처리를 했었던 거였다. 위에서 말한 사고력 부재 혹은 생각없이 일하는 태도가 핵심 원인인 것이다. 반대로 인도네시아는 지금도 네덜란드가 남기고 간 유럽식 교육을 받으니 당연히 한국식의 주먹구구식 개발, 사고력 없는 개발이 납득이 안 됐겠지.
처음 이런 사고력 문제를 인지한게 2015년에 어느 한국 IT커뮤니티에서 봤던 프로젝트 경험담 글이었는데, 10년이 지났지만 하나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 당시 그 글에는 해외 어느 기업의 프로젝트를 한국에서 수주해서 SKP의 컴퓨터 공학과 출신들(속칭 한국 최고의 IT인력들)을 투입해서 6개월~1년간 프로젝트를 했는데, 어쩌다 영어권에서 같은 업무를 배정받게 된 팀이 부트캠프 나오고, 학벌도 시원찮고(?), 아직 개발이라고는 해 본적이 없는 애들로 구성된 팀보다 결과물이 못하다는 이야기였다. 자기들이 하나하나 써 보면서 Slack 채팅창에서 끊임없이 회의하고 고쳐나가는 팀과, 기획서에 적힌대로 자기 파트만 최대한 빠른 속도로 개발하면 된다는 사고 방식의 차이가 주 원인이라는 걸 알게 됐는데, 각 개인별 역량은 뛰어날지 몰라도 시스템 전체적인 완성도는 모두가 모두의 업무를 다 알고 매일 대화한 팀을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야 뭐 이미 온몸으로 겪어봤으니 프로젝트 출발 시점부터 예상이 되지만, 한국의 하드웨어 기술력에 대한 이미지 마케팅에 현혹된 외국인들에게는 그런 조잡한 시스템이 매우 낯선 경험이었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관계자의 불만도 정확히 이 부분이었다.
왜 생각을 안 하냐
내가 보기에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왜 옆에 팀과 대화를 안 하냐, 왜 비즈니스 로직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냐
인 것 같은데, 조직 운영을 개선하고 R&R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더라. 어릴 때부터 사고력 훈련을 받고, 토론 문화가 정착되어 있었어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걸 나도 10년 남짓 한국 노동 시장을 겪으면서 깨달았다. 한국은 천재 1명이 삼라만상을 궤뚫으면서 생각하지 않는 인력들을 인형처럼 활용하지 않는 이상, 저 문제를 자체 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는 노동력 집단을 갖춘 나라가 아니다.
저 학생한테는 저렇게 바보를 바보라고 지적하는 논문은 논문이 아니니까, 우리 수업 때 배운대로
- 법안 설명과 기사 내용들 묶음에서 각각 말뭉치를 뽑고
- 말뭉치들 사이의 유사도가 안 맞게 나오면 파라미터를 어떻게 보정할지 고민해보고
- 한국어로 된 법안 설명과 언론 기사들로 말뭉치 계산을 돌리려면 계산 비용이 막대하게 나올테니
- MariaDB가 작년부터 3D로 데이터 정리하는걸 지원해주니까, (챗GPT 도움을 받아) DB 구성을 하고, 알고리즘을 DB 읽어오는 걸로 돌리는게
- 단순히 txt 파일 수십개 읽어서 처리하는 것보다 더 계산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
- 그리고 마지막에 위의 국회 시스템 데이터를 예시로 밀어넣어서 결과의 격차를 보여주는 슬라이드 1장만 추가하자
라고 코멘트를 해 줬다. (위의 과정 중에 1번과 2번은 이미 지난 2월에 해 놓은 걸 나한테 보내줬었기 때문에 3,4번을 추가해보라고 조언을 해 준 상황이다. 성공하면 3D 처리가 말뭉치 데이터 계산 비용을 어떻게 줄여줄 수 있는지 논리적인 정리를 한, 계산과학적으로 훈련이 된 티가 나는, 나쁘지 않은 석사 논문이 될 것이다. 일반화된 시스템으로 쓸 수도 있고, 굳이 국회 프로젝트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어떻게 만들어올지 보자.)
Generalist vs. Specialist
위의 Generalist vs. Specialist 관점으로 돌아오면,
한국의 공돌이들이 국회에 납품한 조잡한 시스템이나 LG CNS가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인 얼굴에 먹칠을 하고 온 사건 같은 경우들은 Specialist 가 아닌 주제에 Specialist로 자신들을 포장한 사건이라고 봐야하고,
위의 SIAI / GSB 학생이 쓰고 있는 논문은, 완성이 되면 아마 한국의 공돌이들 수준과는 격이 다른 레벨의 Specialist로 자리매김 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저런 Specialist의 숫자가 Critical mass를 넘어가야 Specialist가 아니면서 Specialist라고 주장해서 국격을 추락시키는 사건들을 피할 수 있을텐데, 그래야 SIAI / GSB 에서 훈련 받은 학생들이 우리나라 기업들과 기관들의 중추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을텐데, 너무 소수에 불과하다보니, Specialist라고 거짓 포장하는 인력들의 견제와 질투를 이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SIAI / GSB한테 가짜 대학, 가짜 AI 등등으로 수 많은 시기, 질투, 협잡, 조작, 분탕 사건들이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 저 학생들이 현장에서 얼마나 더 괴로울지 상상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잘 가르치는 것만 생각하고, 실력을 끌어올려주는 것만 생각했지, 정작 무능, 무지, 무식한 인력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실력파 인재들을 정치적으로 몰아내는 간악한 술수를 쓰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 부분에서 우리 학생들을 더 챙겨주지 못해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내가 힘이 약해 미안할 뿐이다.
사실 저 알고리즘 개발도 한국에서 SIAI / GSB가 돌아가고 있었으면 한국인 졸업생들을 이용해서 알고리즘 연구를 하겠다고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온갖 시기, 질투, 협잡을 당하고 있는 사이에, 동유럽 애들이 인건비는 낮은데 생산성이 훨씬 더 높은 상황을 내가 조직 내에서 가장 먼저 겪고 있으면서, 돈 안 되는 한국 시장, 사고력 훈련이 된 인재 1명 찾기가 힘든 한국 시장에서 저 시스템을 돌리고 싶다고 말을 할 수가 없다. 국뽕 자료에만 심취해 있으면 한국이 민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이게 글로벌 시장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이 본 냉정한 현실이다. 빨리 베끼고 완성도를 끌어올리는건 일본이 제일 잘 하다가, 단가가 낮은 한국에 넘어왔고, 이제 중국으로 대부분 넘어갔다. 오늘까지 성공은 단가와 속도로 승부할 수 있었지만, 이미 대부분이 LLM으로 대체되는 업무가 되어버렸고, 좀 더 수준이 높아져도 위의 OpenDAX 사례처럼 SaaS 형태의 서비스들이 나와있다. 남은 영역이 많지 않은데, 그마저도 미국이 중국을 막아주지 않는 영역에서 한국의 경쟁력은 빠르게 사라지는 중이다.
What got you here won’t get you there
이번에 내가 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 인력들과 겪은 경험은 사실 부러움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고 본다.
저긴 유럽에서 이식받고 아시아적인 전환을 100년 이상 거친 교육 시스템으로 인재를 길러내는 나라들이다. 생산 속도 경쟁력에서 챗GPT의 도움 덕분에 격차가 사라지는 시대가 온 만큼,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영역인 사고력 훈련도가 높고, 생산 단가마저 낮은 인력들에게 생산력 우위를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유지할 수 있을까 싶었다.
위의 LG CNS 사건이나, 최근 한국 인력들에 대한 글로벌 팀의 평가, 이번에 쿠알라룸푸르에서 겪은 여러 인연을 봤을 때, SIAI / GSB 동아시아 지역 사무실이 한국에 올 일은 없을 것 같다. 조직의 결정과 별개로, 나 역시도 한국 땅에 정치적 희생양으로 전락하는 탈한국급 인재가 생기기를 원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탈한국해서 취직하려는 학생들이라면 또 모를까.
사무실과 인력 비용을 부담할 각오를 하고 싱가포르 내에 사무실을 만들 것이냐, 좀 비용을 줄이면서 새 인프라가 갖춰지는 조호르로 갈 것이냐, 아니면 비용 부담은 적지만 접근성이 떨어지는 쿠알라룸푸르로 할 것이냐, 셋 중 한 곳으로 결정이 날 것 같다. 여기에도 한국인 SIAI / GSB 졸업생을 Learning center 대표 같은 자리에 임명해주고 싶은데, 언어적인 문제를 넘어서 조직 차원에서 좋아할지 모르겠다.
각 지역별 장단점이 있겠지만, 그간 항상 겪고 느꼈던대로, 눈 앞의 비용이나 겉모양의 화려함보다 실질이 더 중요한만큼, 고급 인재, 초 특급 Specialist를 길러낼 수 있는 인프라가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느냐에 따라 결정을 해야겠지.
